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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사이라, 앞길 망칠라…딸 위험신호 그냥 넘긴 것 후회”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24-08-27 작성자 ghghwk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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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이번만 참자’ 했는데, 목숨을 잃었다고3때 같은 동네 동급생 사귄 효정씨상처나 멍에도 엄마에겐 그냥 싸웠어경찰도 ‘연인 사이 흔한 일’ 치부 많아누가 더 맞았나 등 폭행 맥락 파악 없어가해자 위험성 객관적 판단 기준 필요
대한민국에선 만 17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주민으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존재와 자격을 증명하는 문서다. ‘효도 효’에 ‘곧을 정’, 효도하며 곧게 살라는 뜻을 담아 지은 이효정씨(20)의 이름, 그 이름이 쓰인 주민등록증은 발급된 지 겨우 2년도 되지 않아 폐기됐다. 지난 4월 10일 동갑내기 전 남자친구 A씨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면서다.
4월 1일, A씨는 헤어진 효정씨가 전화와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자 자신을 무시했다며 새벽에 경남 거제에 있는 효정씨 원룸에 무단침입했다. 그는 효정씨 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머리와 온몸을 무차별 폭행했다. 피해자는 외상성 경막하 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치료받다가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열흘 만에 사망했다.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 안쪽 뇌혈관이 터져 피가 고이고, 그 피가 썩어서 장기 기능이 상실되면서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다.
지난달 17일 거제에서 만난 효정씨의 어머니 손은진씨(47)는 그날 이후 아파도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딸은 죽도록 맞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조금 아픈 것 갖고 그러고 싶지 않다. 차라리 그냥 빨리 효정이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화장한 뒤 바로 나온 유골함 만져보셨어요? 너무 뜨거워서 손이 불에 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걸 장갑도 안 끼고 옮겼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우리 딸은 훨씬 더 아프게 갔잖아요.
#128204;플랫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아카이브 페이지

지금 손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딸이 죽기 전 수많은 징후가 있었는데도 그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몸 곳곳에 난 상처와 멍 자국,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불안해하는 모습, 뭘 물어도 꾹 닫고 있던 입. 손씨는 뉴스에서 교제 폭력이 어쩌고 떠들어도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돌아보면 모든 게 위험신호였는데,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게 너무 원통하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효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2022년 4월, 동급생 A씨와 사귀기 시작했다. 벚꽃 아래 서서 웃던 여자를 보고 한 남자가 반해서 고백했다는, 어쩌면 흔한 시작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징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욕설과 폭행으로 딸은 눈두덩이가 찢어지거나 시퍼렇게 멍들어 왔다. 처음 겪는 일에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딸에게 물으면 그냥 싸웠다, 넘어졌다고만 했다.
손씨는 딸이 남자친구라며 소개시켜 주길래 둘을 몇 번 학교에도 태워다 주기도 했다. 그는 좁은 동네인데다 애도 부모도 서로 아는 사이였으니까, 효정이가 다쳐와도 그때는 그렇게 큰 문제라고 인식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해 12월, 파출소에서 ‘딸을 보호하고 있으니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효정이가 그놈이랑 다른 친구들이랑 놀다가 싸움이 벌어졌나봐요. 길거리에 나동그라질 정도로 맞았대요. 그런데 경찰이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할 거냐고 묻길래 안 한다고 했어요. 걔도 효정이도 졸업이 코앞이었고, 대학도 가야 하는데 애 앞길 망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이 사건은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어쩌다 한 번 그럴 수 있는 일로 여겨지기 쉽다. 둘만 있을 때 벌어져 제3자는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피해자 입장에선 연인 관계를 한 번에 끊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번만 참자’, ‘졸업만 넘기자’ 하며 지나간 죽음의 그림자는 결국 피해자를 놔주지 않았다. 효정씨가 거제를 떠나 다른 지역의 대학에 가게 됐지만 A씨가 따라 진학했고 집착과 통제는 더 심해졌다. 손씨는 대학간 뒤 부모랑 떨어져 살면서 어떤 선을 완전히 넘었고 피해에 잠식된 것 같다며 효정이가 대인기피증이 생겨 다른 사람 만나는 걸 어려워했으니까, 계속 그 애랑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란 너무 무섭고 싫은 대상인 한편 유일하게 의존할 곳이 됐던 셈이다.
교제 폭력을 연인 간의 다툼 정도로 안일하게 여기는 건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효정씨는 지난 4월 사망하기 전 1년 간 경찰에 11번이나 신고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당시 신고 내역을 보면 ‘불상 이유로 말다툼하다 피해자 뺨을 폭행’, ‘주거지에서 술을 마시다 시비 중 폭행’ 등으로 나온다.
경찰은 번번이 쌍방 폭행으로 처리하거나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에 따라 수사를 종결했다. 현행법상 폭행죄는 피해자가 바라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게다가 경찰은 A씨가 스토킹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접근 금지 명령 신청 등 피해자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더 의기양양해졌고 폭행도 심해졌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경찰의 대응에 대해 설명하던 손씨의 목소리는 커졌다. 가해자가 자신의 집 주소와 연락처, 가족들까지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보복을 무릅쓰고 처벌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비슷한 신고가 반복되면 경찰이 최소한 둘을 분리해서 조사했어야 하는데, 효정이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어요. 신고가 들어오면 ‘또 싸웠겠거니’ 하고 기계적으로 처리한 거죠.
경찰이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행의 구조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 처리에 급급했다는 점은 지난해 7월 7일 신고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현장 조치 내역을 보면 ‘말다툼하다 피해자(효정씨)가 소주병으로 피의자(A씨)를 가격하고, 피의자는 대항하여 피해자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폭행’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A씨는 단순 폭행이라 ‘처벌 불원’으로 입건되지 않았고, 오히려 효정씨가 특수폭행으로 입건됐다. 위험한 물건을 들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에 대해 지난 2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신고를 누가 했는지, 누가 많이 맞았는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손씨는 경찰은 ‘단순히 신고가 들어오니 출동한다’는 식이었다. 둘이 연인이라는 이유로 ‘싸울 수도 있지’ 라는 식으로 아무 조치도 안하고 끝났다고 말했다. 덩치부터 차이 나는데, 그러면 맞다가 죽으라는 거예요? 효정이는 살려고 몸부림쳤던 건데, 도리어 피해자만 처벌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손씨가 교제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수사 기관이 더 적극 나서도록 매뉴얼을 개선하라는 내용의 국회 국민청원을 올린 것도 이런 억울함 때문이다. 가족·연인 간 폭행과 상해치사 사건 형량을 살인죄와 비슷하게 높이는 등 교제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수사 방식을 개선하라는 내용의 이 청원은 나흘 만에 시민 5만명이 참여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됐다.
손씨는 경찰이 스토킹 범죄로 처리해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직무 유기라고 생각한다며 교제 폭력을 쌍방폭행으로 종결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고 단계에서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스토킹과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서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해 ‘긴급응급조치 판단표’와 ‘긴급임시조치 판단표’를 활용한다.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 위치의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고, 긴급임시조치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주거지 등에서 퇴거시켜 피해자와 분리시키는 조치다.
비슷한 듯 다른 조사표 두개를 활용해야 하니 경찰이 초동 조치 때 혼란을 겪는다. 위험을 판단하는 문항이 추상적이고, 피해자가 본인 상황을 제대로 체크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크다. 예를 들어 긴급임시조치 판단표를 보면 사건처리 참고 기준에 상해, 특수폭행·협박, 상습폭행·협박, 손괴, 일반폭행·협박 등으로 범죄 유형이 구분된다. 그런데 신고 당시 외상이 보이지 않는 폭행이나 목을 조르는 행위 등은 이 범주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신체 인스타 팔로워 외상 뿐 아니라 심리적 통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지만, 현재 체크리스트에는 이 부분도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친밀한 관계 범죄의 특성상 수사기관이 더 적극 나설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해자가 ‘친밀한 사람’인 만큼 피해자는 위험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경하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친밀한 관계에선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기 쉽고, 가해자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며 일견 경미해보이는 범죄에서 시작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진화할 위험이 높다는 게 특성이라고 했다. 이어 경찰이 신고 초기에 선제적으로 개입해 가해자의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계 최대 치안 관련 비영리단체인 세계경찰청장협회(IACP)는 ‘친밀 관계 폭력 대응 정책 및 교육 가이드라인’을 통해 두 사람 중 지속해서 심각한 위협을 미치는 ‘주 가해자’가 누구인지 구분하도록 한다. 또 협회는 현장 경찰이 주 가해자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상부에 보고하도록 해 현장 단계에서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예은 여성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경찰은 단순히 범죄 유형에 집중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피·가해자의 신체 차이는 없는지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특히 눈에 띄는 외상이 없더라도 목을 조르는 피해가 있었는지 면밀하게 살피는 체크리스트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또 수사기관 내에 친밀한 관계 범죄, 젠더 폭력에 대한 전문가 집단을 둬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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